2. 삼위일체론과 관련된 아류들
단일신론(Monarchianism)
신학자들에 따르면 주후 3세기부터 이 삼위일체와 관련한 새로운 주장들이 대두되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단일신론 혹은 군주신론이다.
이 어휘가 풍기는 뉘앙스 자체로 정통 삼위일체론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사상의 핵심은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의 관계를 규명하려는 데에 있다고 하겠다.
이들이 '단일'이라는 부분에 집중하려는 역사적 배경에는 영지주의 및 마르시온이 주장했던 하나님의 이중성과 에온(aion, 영 aeon)의 다양성에 변증학적으로 대항하려 한 것에 있다.
단일신론자들이 내세웠던 핵심 개념들이 '통일성'과 '군주성'이었고, 이는 곧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가 세계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신다'는 유일신 사관으로 자리잡게 된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이 생각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범신론 사상이 넘실대던 당시 하나님을 유일신 한 분으로만 정립하고픈 과욕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단일신론은 시간이 흐르면서 두 가지 흐름으로 다시 갈라지게 된다.
역동적 단일신론(Dynamic Monarchianism) 혹은 양자설(Adoptionism)
단적으로 말해, 이 분파는 성자 하나님의 신성을 부정하거나 단순한 능력으로 폄하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조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발현된 초자연적 권능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스어 '두나미스'란 어휘를 동원하는데, 이는 말 그대로 '권능'을 뜻한다.
바로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가 공생애 사역을 하기 전에는 평범한 인간이었는데,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고 주장하는 그 지점 말이다.
이것이 이 역동적 단일신론을 양자설이라고도 부르는 이유가 된다.
이런 주장은 당연히 정통 교회들로부터 거부당하게 된다.
이 아류의 창시자 비잔틴의 테오도투스(Theodotus)는 기본적으로 세례 전의 예수와 세례 후의 그리스도를 구분한다.
다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자체를 부인하는 영주주의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인간의 몸 입으심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예수에게 임한 성령이 그리스도라는 가르침은 정통 기독교의 가르침과 완전히 배치된다.
요한복음 1장 1절과 1장 14절, 그리고 마태복음 16장 16절을 보면,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고, 예수는 곧 성자이신 그리스도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여기에다 사도행전 16장 6~7절에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예수의 영'이라고 못박고 있다.
이는 곧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이라는 각각의 위가 각기의 특성을 갖고 일체를 이루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고 하겠다.
테오도투스와 그의 제자들은 교회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자 이를 변증하기 위해 원래 예수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성령이 그 분 속에 내주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감동'시킨 것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이들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 신명기 18장 15절과 누가복음 1장 35절을 인용하고 있다.
테오도투스가 자신은 그리스도의 인성만을 부정했다고 강변하는 이유 역시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해 생각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좋은 증거가 될 뿐이다.
역사적으로 이 역동적 단일신론은 로마의 아르테몬(Artemon)에게 전수되었고, 주후 260년부터 안디옥의 주교를 지냈던 사모사타의 바울(Paul of Samosata)에게 이르게 된다.
이 분파는 당시 로마사회를 휩쓸고 있던 다신론 내지 범신론으로부터 기독교의 교리를 나름대로 변증하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 성자는 물론 성령의 위격을 부정하게 된다.
특히 사모사타의 바울은 테오도투스가 세례 이전의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이 무리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성자의 존재를 성육신 이후에 성령에 의해 잉태된 이후부터 존재한다고 재주장함으로써 삼위일체의 영원성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만다.
다시 말해 그는 본질적으로 인간 예수가 도덕적으로 가장 완전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들로 삼았다는 소위 '양자설'을 주장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수를 성자 하나님으로 섬기고 그의 사역을 통해 속죄의 구원을 얻는 도그마는 한낱 도덕적 규범에 지나지 않게 된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이 역동적 단일신론은 주후 4세기까지 일정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며, Arius 일파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양태론적 단일신론(Modalistic Monarchianism)
이 분파는 역동적 단일신론과는 달리 소아시아 및 광범위한 로마제국의 여러 지역에 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
서머나의 노에투스(Noetus od Smyrna)와 그의 추종자들이 이 사상을 로마에 전하면서 본격 전파된 이 단일신론은 '하나님의 유일성과 성자의 신성을 변증'하고자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이들은 위에 언급된 양자론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설명할 수 없다고 간파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자의 완전한 신성을 인정하는 것도, 부인하는 것도 아닌, 그저 그리스도의 위격을 인정하지 않은 채로 성부의 본질에 포함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이들은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을 삼위가 아닌 각기 다른 이름과 모양을 가진 동일한 하나님으로 설명한다.
이 주장을 조금더 밀고 나가게 되면 성자와 성령은 성부 하나님의 각기 다른 현현 방식이라고 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 하나님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형태가 다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양태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오늘날에도 흔히 듣게 되는 '성부 수난설'이 이 양태론적 단일신론의 핵심이라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
성자 대신 성부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고난받고 죽게 되었다는 이 사실 앞에 우리는 아연실색하게 된다.
노에투스는 일찌기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은 하나의 세 양태인데, 이는 마치 배우가 쓰는 가면처럼 상황에 따라 하나님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고 하였다.
프락세아스 역시 요한복음 10장 30절과 14장 9절을 근거로 성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받으셨다면서 성부와 성자의 하나됨을 강조했지만 둘의 관계를 영혼과 육체의 관계로만 인식했다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사벨리우스의 양태론은 정통 삼위일체론의 가장 큰 장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
"삼위는 하나인 동시에 동일 본질에 속하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써만 구별된다"라는 그의 변증은 삼위 모두에게 위격을 부여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단일신론과 차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전히 삼위를 단일한 실체로 보기는 하지만 삼위 하나님이 세 가지의 다른 양식으로 현현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다.
삼위의 존재 양식을 '태양과 광선, 그리고 발생하는 열'의 양태로 설명하는 이 분파의 주장을 현대 교회 강단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다.
즉, 태양은 성부, 광선은 성자, 그리고 열은 성령의 역사로 비유하는 이 표현 양식은 전형적으로 사벨리우스의 주장과 일치한다.
한 가지가 더 있다.
구약은 창조자와 율법 수여자로서의 성부 시대, 신약의 초반부는 인류 구원을 위한 성자 시대, 그 이후는 부활 승천한 성자가 본래의 형상으로 회복하자 하나님의 영이 세계를 통치하는 성령 시대로 구분하는 것 역시 양태론자들의 설명 방식에 속한다.
시대마다 당시의 필요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을 적절히 묘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삼위를 각기의 고유한 본체를 가진 위격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인격 안에서 행해진 세 가지의 표현 양태 내지 역할로 묶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해서 사벨리우스의 생각을 삼신론이라고 다르게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다 한 하나님이 여러 모양으로 현현하는 양태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정작 그가 부인코자 했던 범신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겠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수난 사실을 부정한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겠다.
위의 논의들을 정리해 보면, 교회사적 흐름상, 위에 제시된 노에투스와 프락세아스(Praxeas)가 양태론의 최초 주창자들이라고 할 수 있고, 3세기 초의 사벨리우스(Sabellius)에 이르러 이론적 토대가 정립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하여 이 분파를 '사벨리우시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양태론적 단일신론은 교부 터툴리안에 의해 비판받게 되고, 결국 주후 261년 이단으로 정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