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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크레이지티처 2021. 3. 16. 08:01

모더니즘(Modernism)

모더니즘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Modern'과 'Modernity'라는 단어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리가 우선일 것이다.

'모던'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과거와 대비되는 새로운 그 무엇'의 의미로 사용된다.

대략 AD 5세기 경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그룹이 고대 세계와 로마제국의 문화와 비교하여 자신들을 '모던'이라고 정의하면서 이 어휘의 사용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단어는 대개 'Ancient'라는 말과 대립되는 의미로 사용되면서, 통시적으로 각각의 시대마다 새로움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로 전용되어 사용되었다.

 

한편, 근대성, 혹은 현대성으로 번역되는 '모더니티'는 '현대적인 사회 현상'을 의미하는 역사철학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의 모더니티, 즉 근대성의 시작은 아마도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대부흥을 이루었던 르네상스 시대였다고 여겨진다.

종교의 권위보다는 합리적 이성이 존중되고, 그 연장선상에서 급속히 발전한 과학이 결정타 역할을 했다.

종교성을 바탕으로 한 집단 공동체주의 보다는 개인의 존중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이 근대적 사회 이념은 18세기 계몽주의 시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보다 더 확실하게 그 정체를 드러낸다.

스피노자, 로크, 그리고 뉴턴 같은 계몽주의 철학자 및 과학자들은 지적으로 자유롭고 창의적인 개인들이 연구하여 얻은 지식만이 결국 인간을 해방시키고 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보장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위의 논의들을 알기 쉽게 재정리하자면, 넓은 의미의 모더니즘은 과거의 교회의 권위 또는 봉건성에 반항, 과학이나 합리성을 중시하고 널리 근대성을 지향하는 것을 뜻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기계문명과 도회적 감각을 중시하여 현대풍을 추구하는 사조를 뜻한다.
학문적으로 예술적 모더니즘은 감각적인 동시에 추상적이며, 초현실적인 일련의 운동을 의미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를 모던아트(Moden Art)로 바꾸어 부르는 경향이 있다.
19세기 예술의 토대라 할 수 있는 리얼리즘에 대한 반동이자,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전위예술, 즉 아방가르드의 한 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모더니즘은 근대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예술성의 한 경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합리성에 바탕을 둔 과학적 사고를 흔히 현대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주관과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냉철한 이성과 과학적인 관념을 취하는 것이 곧 현대성의 자질을 갖췄다고, 즉 모던하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19세기의 구습에서 벗어난 '보편적인 가치와 문명의 공유'가 모더니즘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이 실천되는 과정에서 힘의 논리에 의거하여 반대 논리를 억압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한때 전 세계를 휩쓴 제국주의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바로 이 모더니즘이었다는 것이다.

서방 제국에 의한 후진국에 대한 통상 강요 및 식민지 건설은 왜곡된 근대화 혹은 서구화를 촉진하였고, 지역적 특색이 강한 민족 고유 문화는 열등한 문화로 비하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대한 반발로 감정보다는 이성, 의식, 확실성, 일관성 등 근대적 사유의 틀을 버리고, 이성보다는 감정, 모순, 불확실성, 개성, 자율성, 다양성, 그리고 대중성 등을 보다 중요시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더니즘이 극에 달했던 시기는 대체로 1920년부터 1960년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Posrt-Modernism)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쉽게 말해 모더니즘이란 말에다 '후'  혹은 '탈'을 뜻하는 포스트(post)라는 접두어를 붙여 만든 말이다.

말 그대로 모더니즘 이후에, 모더니즘과 상반되는 특징을 갖는 작품이나 작가, 혹은 취향이나 태도 등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애초에 이 개념어는 1960~70년대 미국에서 문학과 건축 등의 예술 관련 분야에서 사용되던 어휘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 사조는 1960년대에 발생한 문화운동인 동시에 정치, 경제, 사회, 심지어 종교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위에 언급된 바와 같이 모더니즘의 주요 개념으로부터 야기되는 작용과 반작용을 통해 그것을 확장하거나 대체시킨 사조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일률적인 것을 거부하고 다양성(多樣性)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주체적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특징이 있다.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실증주의나 실재론 같은 철학 사상 역시 이 사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이 사조가 경제 그리고 사회적으로 특별한 상황 속에서 도출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말하는 이 상황은 후기자본주의와 이로 인한 방송 미디어그룹의 급격한 성장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들이 당시의 사회를 새로운 역사적 시기로 진입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일부 사상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지 모더니즘의 확장일 뿐이지, 그 자체로 새로운 시대나 사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조 발생 초기의 이런 논쟁들은 경제 및 기술적인 여러 진보적 상황들이 항존적 실체로 간주되는 이데아(Idea), 혹은 로고스(Logos)로부터 주체를 의식하는 개인으로서의 객체를 분리시켰다는 것만큼은 일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포스트모더니즘이 난해해 보이는 것일까.

그 이유는 철학, 예술, 문학, 건축 등 각 분야에서 이 사조의 양상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건축 분야에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19세기 후반의 과장된 양식을 강조하는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동(反動)으로 탄생한 모더니즘 양식이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기능적이라는 비판적 재반동 의식에서 태동했다.

문학에서도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충돌은 더욱 극적으로 등장했다.

물론 작가들은 물론 비평가들마다의 해석이 각양각색이었다.

레빈은 모더니즘의 난해한 지성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반지성주의가 대립각을 세운다고 보았다.

반면 핫산이나 피들러는 지식보다는 비전, 논리보다는 환각, Ego보다는 Id를 중시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이라고 분석했다고 한다.

이 사조의 영향으로 인해 문학에서는 장르의 벽이 느슨해지고, 전지적 시점보다는 다른 시점을 채택함으로써 현실감을 증대시키고 독자의 상상력을 보다 중요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설의 에필로그 부분에 약간의 여운을 남겨두고 독자로 하여금 환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의 소설들은 작가 위주의 문학에서 벗어나 독자가 능동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또한 아방가르드적 유미주의가 미(美)적인 것과 비(非)미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과 달리 포스트모더니즘은 그와 같은 구분을 거부한다.

자유분방한 소설 양식을 강조하기 위해 저속한 것(키치, kitsch)를 삽입하고, 다른 사람의 작품을 자신의 것에 혼합하는 혼성모방(패스티쉬, pastiche)을 이용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더욱 혼란은 가중된다.

제임스 조이스, 프루스트, 그리고 카프카 등이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라면, 보르헤스, 마르케스, 움베르토 에코 등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대변하는 소설가들이다.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학이나 건축보다 훨씬 난해하다.
1960년대 프랑스 철학가 레비-스트로스로부터 본격화된 철학적 흐름과 깊은 관련이 있다.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사이의 대립으로 흔히 분류되는 이 철학적 흐름은 근대 철학이 서 있는 지반을 근본부터 공격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철학 분야에서 태동되기 시작한 것은 모더니즘과 구조주의에 대한 반작용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구조주의에 대항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그것이 포스트구조주의로 이어지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실제 포스트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상당히 비슷한 개념이고,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로 분류되는 사상가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사조에 속한 철학자들은 이성을 중시하며 등장한 모더니즘이 추구한 정치적 해방과 철학적 사변도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했다고 한다.

데카르트 이래의 근대 철학 토대이던 '주체'와 '진리'라는 범주 등을 비판 내지 해체하며, 세계나 지식이 하나의 단일한 전체일 수 있다는 '총체성' 개념을 부인한다.

이후 여러 철학 분야에서 출현한 유사한 경향들을 하나로 묶어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로 지칭하기 시작했다.

위에 인용한 레비-스트로스가 대표적 철학자이고, 라캉, 푸코, 들뢰즈, 데리다, 그리고 리오타르 등이 바로 여기에 속하는 사상가들이다.

 

1980년대부터 한국에 불어닥친 포스트모더니즘은 많은 논쟁과 글이 나오게 했는데, 학자마다의 논의가 너무 달라 많은 혼란이 있었다.

특히 예술 분야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1980년대 중반 서구의 이론이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채 우리나라 예술계에 수용되면서 혼란과 유행이 뒤섞여 버렸다.

미술, 음악의 대중화와 미술에서 등장한 팝아트와 비디오아트, 음악에서 등장한 랩과 같은 장르들은 한국의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장르는 기존의 예술과는 매우 다르게 개성이 넘치고 자율적이며 다양하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에 대한 반발 내지 논쟁의 중심은 이 사상이 서구 중심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근, 현대의 역사와 사회 발전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찾는가에 있었다.

더 나아가 미술 같은 분야는 서구의 모더니즘, 그리고 그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과는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이슈가 되었다.

'그 후' 라는 의미의 포스트(Post)라는 접두어를 사용하게 되면,  앞에 있었던 운동과 필연적으로 연결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문화 사조는 물이 흐르듯이 그 앞, 뒤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갖는 개념적 모호성은 지금까지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단순히 개방과 다양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