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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공략

4. 논술 족집게 전략(4) - 내 것인지, 네 것인지를 밝혀라

by 크레이지티처 2021. 3. 16.

근거를 통해 공격당하지 않기

글의 근거는 작문에서는 논거라는 말로 쓰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지요.

아무리 그럴 듯한 글이라도 논거가 없으면 그것을 평가하는 사람을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근거나 논거라는 말이 좀 어렵다구요.

그냥 단적으로 여러분의 글쓰기 출처를 선명하게 밝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글쓴이는 눈에 불을 켜고 글의 약점을 잡아내려는 상대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됩니다.

귀하가 어떤 글을 하나 썼다고 칩시다.

거창한 논문이나 15페이지짜리 소논문 혹은 2페이지 분량의 글쓰기 수행 평가도 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그 분량에 상관없이 당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족하거나 아예 없게 되면 이건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그건 그냥 작문이 아니라 내용 요약인 셈이지요.

특히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자신의 글을 발표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신경을 써야 합니다.

위에 언급한 '평가자'는 여러분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거나 교수님, 혹은 같은 클래스의 친구일 수 있습니다.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로 당신의 성적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면 이런 글쓰기는 지옥행 티켓을 끊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어느 C신문 기사 하나를 아래에 인용합니다.

미리 말씀을 드리자면 이 글은 별로 좋은 글은 아닙니다.

만연체에다 기자의 논지가 명확치 않고 이중적이기 때문입니다.

 

응시 의사 표명만으로 추가적인 기회 부여는 어렵다. 다른 국가시험과의 형평성과 공정성에 대한 문제와 이에 따른 국민적 수용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강도태 보건복지부 2차관은 29일 의사 국가고시 응시를 철회한 의대생들에게 추가 응시 기회를 주는 것에 대해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했다. 지난 24일 보건복지부가 밝힌 입장대로라고 했다. 앞서 정부·여당의 일방적인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추진 등에 반발해 한 달 넘게 파업을 이어오던 전국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본과 4학년들이 “의사 국가시험에 응시하겠다”고 한 것에 대한 답이었다. 추가 응시를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

복지부는 지난 16일만 해도 입장이 달랐다. 의대 본과 4학년생들이 지난 13일 “단체행동을 잠정 유보하겠다”고 물러서자, 김강립 1차관이 “시험을 보겠다는 명확한 의사 표시가 없어 국시 추가 기회를 검토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잠정 유보’라는 말로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대생들은 ‘명확한 응시 의사’를 표명했다.

정부와 여당은 의대생들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응시 철회는 잘못했습니다”라고 국민들에게 사과하면 정부의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의대생들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의사 국가시험 응시를 거부하기로 했던 학생들에게 추가 시험 기회를 주는 것이 불공정한 ‘특혜’라는 여론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밑줄 친 부분이 바로 자신의 글과 타인의 것을 구분짓기 위한 인용문이지요.

기자들이 흔히 보도 후에 있을 수 있는 후폭풍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입니다.

쌍따옴표를 사용할 수도 있고, "~~~에 의하면"이란 수식어를 사용하면 굳이 저런 식으로 안 해도 됩니다.

둘 다 가능하다는 이야기지요.

신문기자들이야 혹시 생길지도 모를 재판 송사에 대비하는 것이지만, 입시생들은 미래가 걸린 중요한 일이기에 정말 신경써야 할 부분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위의 기사 같이 쓰는 것보단 "토마스 쿤에 의하면 패러다임이란~~~"라는 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내 것인가, 아니면 그 누구의 것인가

논거의 중요성에 대한 더욱 확실한 사례를 하나 소개하지요.

연세대 대학원에서 첫 학기를 보내던 필자는 어느 강의에서 아주 인자한 인상의 K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키까지 단아해서 모든 학생들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었죠.

만만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었습니다.

강의 첫 시간에 세미나 순번을 정했는데 제가 세 번째 발제자로 뽑혔습니다.

첫 번째 발표자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발제자가 열변을 토하며, "이리하야 저러하야~~~"라고 하며 8페이지 정도 되는 리포트의 둘째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군, 잠깐만, 1페이지의 네 번째 문장은 자네의 견해인가? 아니면 인용한 저자의 의견인가? 그것도 아니면 저자가 그의 책에서 인용한 그 누군가의 주장인가?"

일순간 강의실은 얼음장 같이 얼어붙었습니다.

고요한 정적이 어찌나 공포스럽던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왜냐구요?

너무나 아픈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지요.

 

두 번째 발제자 역시 무참하게 발표를 중단해야 했고,  바로 그 다음이 필자였습니다.

일주일 내내 K교수님의 손을 떠난 페이퍼가 공중을 유영하던 그 장면이 제 뇌리를 맴돌았습니다.

필사의 노력 끝에 마침내 한 가지 방안을 찾아냈습니다.

각주를 다는 것이었습니다.

선배의 충고가 밑바탕이 된 결과물이었습니다만, 그것은 수류탄의 안전핀을 스스로 뽑은 행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발표 당일, "박 군, 각주를 단 것은 훌륭하네만, 각주에 인용된 책은 다 읽었는가? 특히 이 책은 아직 국내에 반입이 안 된 것으로 아는데?"

아뿔싸...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이 딱 이경우에 해당했습니다.

전 그 날 아주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각주를 안 다는 것보다 더 못한 결과를 얻었으니 말입니다.

지식 사기꾼으로 몰릴 뻔한 그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합니다.

그 이후, 나는 내가 읽지 않은 책은 아예 각주로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누구의 말을 인용할 부분이 있으면, "라인홀드 니이버에 의하면~~~"이라고 밝힘은 물론 되도록 번역서가 아닌 원서를 찾아 꼼꼼히 읽은 다음 각주를 다는 습관을 갖게 되었죠.

독한 스승 덕분에 지금까지 아주 좋은 글쓰기 버릇을 얻게 되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대목이지요.

현재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입시를 앞두고 있는 고교생이라면 채점관이라는 공공의 적을 상대해야 합니다.

그들은 만만한 상대가 결코 아닙니다.

대학에서 밥 먹듯이 글을 쓰시는 분들이니 말이죠.

글에 인용한 아주 짧은 인용문 하나라도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죽은 목숨입니다.

물론 입시 논술에서는 각주를 달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OOO에 의해서~' 혹은 'OOO에 따르면~'이라고 논거의 명료성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죠.

대치동 교육원 시절, 입시를 목전에 둔 학생들을 지도한 경험을 잠깐 말해야 할 것 같네요.

무분별한 산림 벌목으로 도룡뇽이나 버들치 같은 생물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중 한 대목이 대충 이랬습니다.

 

"우리 나라는 평지보다 산악지대가 많은 나라이다. 그러나 해방 후, 무분별한 벌목과 화전으로 인해 산림이 황폐해졌다. 박정희 대통령의 녹화사업으로 인해 다시 산마다 푸른 숲이 우거졌으나, 이후의 개발 드라이브로 인해 버들치 같은 청정 어족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얼핏 보면 그럴싸 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저 글을 어떻게 교열하시겠습니까?

잠깐 읽기를 그치시고 한번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글을 첨삭할 때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첫째, 우리 나라는 산악이 전 국토의 몇 퍼센트인가?

둘째, 박정희 대통령의 녹화사업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셋째, 산업 개발 드라이브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가?

넷째, 버들치가 청정수에 산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런 교열 근거에 의하면, 저 위의 글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합니다.

 

"국토교통부에 의하면 우리 나라는 산악지대가 65%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평지보다 산이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1945년 해방 후, 산업 기반이 없는 관계로 생계가 막연한 사람들에 의해 무분별한 화전이 자행되었고, 이로 인해 산림이 황폐해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1960대 중반 산림청을 발족하면서 강력한 녹화사업을 펼침으로 인해 다시 산마다 푸른 숲이 우거지게 된다. 하지만 새마을 운동 및 수 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토대로 한 개발 드라이브로 인해 1급수에만 사는 보호대상 해양생물인 버들치 같은 청정 어족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언더라인을 친 부분이 바로 소위 논거에 해당됩니다.

물론 사람이 한 말은 쌍따옴표를 따거나 "~~~에 의하면" 이라고 그 근거를 밝히면 됩니다.

위의 논거들은 이미 많이 알려진 공적인 팩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논술에 사느냐 죽느냐가 여기에 달려 있다는 것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