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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미국 속의 한국(3) - 어느 한인 마트 이야기(3) "하이, P 상... 지금 6개월째 수금이 안 되고 있는데... 점장한테 얘기 좀 해 줄 수 있나요?" 미스터 나카무라는 이 곳에 일본 그릇을 납품하고 있는 사내다. 나이는 60을 넘었지만 참 나이스하고, 항상 서글서글하게 웃는 사람이다. 단 한 번도 인상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고, 내게 무리하게 상품 입고를 권한 적도 없다. 소량의 물건이 필요해서 전화를 걸면 언제나 흔쾌히 배달을 해 주는 그런 세일즈맨이다. 한 마디로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나이스 가이가 바로 그다. 이랬던 나카무라가 아주 조심스럽게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네며 내 눈치를 본다. 참 마음이 불편하고 미안하다. 이런 대형 마트가 어떻게 반 년 동안이나 물품 납품만 받고 돈을 지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대금 결제에 관한 .. 2021. 3. 24.
13. 미국 속의 한국(2) - 어느 한인 마트 이야기(2) 20**년의 어느 여름날. 연일 화씨 100도가 넘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등판대기에 땀이 줄줄 흐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매장 안은 서늘해서 그나마 살 만하다. 오늘 나는 그로서리 파트에서 전자부로 부서를 옮겼다. 뭐 별다른 이유는 없다. 체격도 그저 그렇고 덩치도 그다지어서 무거운 짐을 나르기에 부적합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원래는 모가지가 날아가야 정상인데, 이 곳은 오픈 매장이라 인력이 아쉬운 탓에 자리만 옮기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나에겐 그닥 나쁜 일은 아니었다. 깨끗한 물건을 다루는 일이니 옷이 더러워질 일이 없다는 것이 제일 좋았다. 다만, 파트 직원이 나 혼자여서 바쁘신 매한가지였다. 하루 종일 전자부에 배정된 기다란 복도를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물건을 정리했다. 가끔 '덩어리져서 일.. 2021. 3. 24.
12. 미국 속의 한국(1) : 어느 한인 마트 이야기(1) 20**년 을씨년스럽게 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봄날. "야, 이 O새끼들아, 똑바로 줄 안 맞춰?" A 상무가 물류 창고에 한인 직원들을 불러 모아 놓고 눈을 부라린다. 오른손에 긴 막대기가 하나 들려 있다. 누가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간 후려갈길 태세다. 자기 분을 못이겨 식식거리더니 웃통을 벗어 젖힌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야, 너. 여기가 뭐 장난치는 곳인 줄 알아!" 하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영문을 모르고 어리중절 하는 나에게 성큼 다가선 그가 재차 다그친다. "너, 아까 점심시간에 저기 짱박혀서 놀고 앉았더라. 여기가 놀고 먹는 곳인줄 알아?" 이건 또 뭔 Dog Voice인가. 웃음이 피식 나온다. 무엇보다 나이든 직원들에게 반말을 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본사에서 .. 2021. 3. 24.
11. 덜 멍청한 사람, 아무나 되라. 2020년 11월 3일. 이 날은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이와 더불어 2년 임기의 하원의원 435명 전체와 100명 정원인 상원의 3분의 1, 그리고 일부 주지사들을 동시에 선출한다. 선거 참여자가 투표장에서 대통령을 찍기는 하지만, 그것이 고스란히 대통령 선출을 위한 득표수로 누적되는 것이 아니라 각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 확보를 위한 중간 과정으로 치뤄진다. 각 주마다 1명이라도 더 득표를 한 대통령 후보는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 모두를 가져간다. 이를 소위 승자독식제라고 한다. 11월 3일 종료된 이후, 선출된 총 538명의 선거인단은 12월 8일 형식적인 대통령 선거를 다시 시행한다. 이런 이유로 해서 미국 대선을 간접선거라고 부른다. 물론 이 선거인단은 자신이 지지할 대통령 후보.. 2021. 3. 24.
10. 하루 10만 명의 코로나 확진자 2020년 11월 1일 오전 6시 30분. 나는 거의 무의식적 습관으로 머리맡의 스마트폰을 더듬거려 찾았다. 눈꼽을 비비며 화면을 켠 다음 곧장 구글링을 시작했다. 키워드는 covid19 cases. 미국 전체의 어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그제의 85,000명이란 숫자가 무색하기만 하다. '아뿔싸...이 일을 어쩐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아내는 내가 아침마다 케이스 넘버를 불러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침부터 부정을 탄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그런데 어쩌랴, 뉴욕주 역시도 2,000명을 가뿐히 초과했다. 이웃 뉴저지도 매일 1,500명에 육박하는 감염 확진자로 인해, 주지사가 주 전체를 전면 봉쇄하겠다고 한다. 한국 포털 메.. 2021. 3. 24.
9. 어디에나 끼리끼리는 있다. 딸 아이가 어느덧 중학교 8학년, 즉 졸업반이 되었다. 조금씩 친구들을 사귀어 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한 일본인 친구를 사귄 모양인데 서로의 감성이 비슷해 통하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하루는 집에 돌아와서는 워싱턴 D.C.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등록을 해야 한다며 투덜거린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이미 한 번 갔다 왔기 때문에 신선함이 떨어졌으리라. 그래도 지난번에 8개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가운데 4군데를 구경 못했으니 이번에 꼭 보라고 부추겼다. 반응이 영 신통찮다. 그렇게 우물쭈물 하다가 그만 등록 시기를 놓쳐 버렸다. 아차 싶어 급하게 학교에 연락을 했다. 다행히 학교 당국이 아직 버스 예약을 하지 않아 여행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부부가 모두 미국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 아이에게 소홀했던 것.. 2021.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