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역사적 고찰
이세라("한국의 여성주의 운동 과정에 표상된 분열의 담론 탐색", 한양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20)에 인용된 김은주 및 김귀순의 주장에 의하면 페미니즘은 3가지의 물결로 규명될 수 있다고 한다.제 1물결은 19세기 M. Wollstonecraft에 의해 주창된 여성 참정권 확보를 위한 운동으로 시작되었다.시기적으로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이다.주된 쟁점은 유럽 가정에서의 남편 폭력, 직장에서의 성차별적 노동과 그에 따르는 차등적 임금, 거리에서의 성폭력, 그리고 근대 국민국가의 시민주체로서의 여성 참정권 권리 확립이었다.그 결과 유럽을 포함한 많은 국가의 여성들에게 선거권이 부여되기는 했지만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이후 오히려 그 영향력이 약화되어 버렸다고 한다.
제 2물결의 시작은 1960년 대 말에 등장한 학생운동과 민권운동에 의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이런 무브먼트를 지탱해 주는 이론적 기반들이 바로 급진주의 사회학 및 정치학, 그리고 해방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이 물결에 속한 페미니스트들은 남녀의 차별 및 불공정한 상하관계에 주목하였는데, 주로 여성해방과 남녀평등권 진전을 위한 정치적 저항 운동이 주된 이슈였다고 한다.예를 들어, 조직의 남성 사이에서 야기되는 폭력은 억압이 되지만, 여성에게 가해지는 남성의 폭력은 지극히 개인적이거나 '격렬한 로맨스에 의한 해프닝'으로 치부되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이런 남녀의 갈등을 대립시키는 이분법적 접근은 주로 백인 중산층 여성들이 주도했으며, 여성이 사회에서 자신들의 위치에 대한 지식이 많아질수록 그들의 현재 지위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증가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한다.이것을 성취하기 위한 핵심 전략은 가부장적 제도의 모순 및 억압의 본질을 폭로하는 것과 여성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제 2물결의 시대는 1980년 말까지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제 3물결은 1990년 대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후기구조주의의 이론을 그 바탕으로 한다.이 흐름의 본질적 속성은 여성을 거시적으로 하나의 동일 속성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그들에게 주어진 미시적 맥락에 따라 파악하는 것에 있다.즉, 여성 문제를 보다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녀를 2분법적으로 갈라놓기 보다는 계급, 인종, 지역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별성과 다양성을 아우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다시 말해 여성은 단수가 아닌 복수로 다양성과 복잡성이 교차하는 존재인 동시에 생산과 재구획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주체적 객체들의 결합체라는 것이다.이런 생각을 정리하면, 제 3물결 역시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 바라본 '올바름'에 대한 순종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정치지향적이기는 하다.그와 동시에 세속적 쾌락과 권력 관계의 모호함을 전략적으로 수용하려고 노력한다든지, 문화적 대중주의를 일부 포용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의 변질이라는 비판을 함께 받고 있기도 하다.
개념적 정의
일반적으로 본격적인 페미니즘의 시작은 1960년 말에서 1970년대 초에 급진적으로 전개되었던 여성해방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위에서 고찰된 바와 같이 이 운동은 처음부터 페미니즘에 대해 합목적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것이 1980년에 들어 여권 신장 운동으로 본격화 되고, 결과적으로 예술계 전반은 물론 종교에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페미니즘이란 어휘가 공식적인 학술 용어로 자리잡게 된다. 처음엔 문화 영역에서 시작되었던 이 사조는 적극적인 지지자들이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이슈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그 존재감을 높이게 된다. 이 부분은 매스미디어의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의 시작에 대한 정의는 여성의 경험과 역사를 다루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고, 이는 곧 기존의 성별 관계를 차별적인 것으로 조망함은 물론 사회 내의 여성의 지위를 재정립하려는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운동이라고 규정짓게 된다.쉽게 말해 남녀의 성은 차별적 성(sex)로서가 아니라 또 다른 동등한 성(gender)의 문제로 다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학술적 정의를 그대로 따르게 되면,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기가 곧 이 사조의 핵심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는 마치 모더니즘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반발을 연상케 한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대두되는 주요 주제가 바로 잃어버린 여성의 주체성 찾기와 여성에 대한 왜곡된 가치체계의 타파라고 할 수 있겠다. 정은주("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전개와 그 특성에 관한 연구", 동국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1)에 의하면, 페미니즘은 두 가지 차원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했다. 첫째, 피해 집단에 의한 권력 투쟁으로서 상당히 정치적이고 투쟁적인 철학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며, 둘째, 여성들 스스로가 만들어 온 것으로써, 그 동안 가부장적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던 여성적 문화 혹은 여성 의식의 제고를 추구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비평가 이종승은 페미니즘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먼저, 여성의 심리 체계는 본질적으로 남성과 동일하였지만, 역사 및 문화의 진화 과정 중에 왜곡되고 변형되었다. 다음으로, 여성만이 갖는 고유한 특성은 그 자체로 보존되고 옹호되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남성과 여성의 차별성에 초점을 맞춘 논의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 왜냐하면 차별성에 시각을 맞추는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문가의 판단은 결국 여성 해방 혹은 여권 신장에 대한 논쟁이 양성만의 공간이 아닌 제3의 담론 공간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고 하겠다.
페미니즘의 이론
본질주의적 페미니즘
이 사조는 후기 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주로 논의되었던 것으로 남성 중심의 이성주의적 담론과 재현을 해체하는 데에 주된 목표를 둔다. 남근 중심주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여성성은 소위 '선천적으로 거세된 남근'을 가진 거세 컴플렉스에 매여 있는 존재이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유아기의 남자 아이가 그의 어머니를 놓고 그의 아버지와 경쟁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그의 부친으로부터 남근 거세의 공포를 느낀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 거세 공포증 사이에 끼인 이 아이는 결국 아버지에게 굴복하고 남근 거세의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남자 아이는 완전한 남성성을 갖게 되지만, 애초부터 남근을 소유하지 못한 여자 아이는 결국 불완전한 존재로 낙인 찍히게 된다. 이런 프로이드 이론에 바탕으로 둔 여성성은 penis envy를 지향하는 남성 의존적인 성 정체성에 국한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프로이드는 유아기의 어린이들은 모두 양성 본능을 가지고 있지만, 성장하면서 남녀의 성 정체성이 분리된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의 이론이 남성의 페니스에 우월성을 부여하는 결정론적 인본주의로 비춰지는 부분이 있고, 이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용납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본질주의적 페미니즘은 고유의 여성성을 확립하기 위한 학술적 성심리 구축에 전력을 다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들은 필연적으로 '전 오이디푸스 단계'의 어머니와 여자 아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에 주력한다. 왜냐하면 이 단계는 아직 남성과 여성의 성 정체성이 분리되기 전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여성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규명하기 좋은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의 고유한 특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여성의 신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전 오이디푸스 단계'에 존재하는 성적인 모친(sexual mother)이 곧 여성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 본질적 여성이야말로 여성의 성적 특이성을 재생산하는 원천인 동시에 전통적 부계사회를 종식시킬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된다. 물론 이런 주장은 본질주의적 분리주의 혹은 또 다른 여성중심의 형이상적 전통일 수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사회문화적 페미니즘
이 사조에 속한 사람들은 여성들의 성적 특성에 초점을 두는 본질주의적 페미니즘을 전향적으로 비판하면서, 유물론적 사회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문화적 성(gender)으로서의 여성성 정립을 시도한다. 이들은 본질주의라는 어휘가 갖는 철학적 베이스의 한계를 사회 현상에 대한 현실적 인식의 부족에서 찾고 있다. 즉, 사회문화적 페미니즘의 이론적 토대는 기존 사회 시스템이 추구하는 고정된 여성성을 타파하고, 여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을 거부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보여진다. 이는 곧 르네상스 이후 서구 사회를 지배해 온 합리적 이성 및 자율적 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인본주의에 대한 반동이라고 할 만하다.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태동으로부터 시작된 이 유파는 인간을 어디까지나 사회적 존재로 이해해야 하며,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여성성 역시 사회 문화적인 구조 안에서 파악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사회문화적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생리적 특성을 여성성을 드러내는 한 요소에 불과하며, 사회, 문화, 심리적 경험들의 축적이 진정한 성을 규정한다는 유물적 사관을 거의 그대로 차용한다. 여기서 이 사조의 진면목이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여성성은 여성 자체를 이해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남성와 여성의 관계 그리고 여성이 참여하고 있는 사회 시스템과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검증해야만 역사 속에 존재하는 성차별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측면에서 본질주의 페미니즘이나 사회문화적 페미니즘 모두는 남녀의 신체적 특성에만 초점을 맞춘 접근 방식을 거부한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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