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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실존주의( Existentialism ) : 철학

by 크레이지티처 2021. 3. 16.

태동의 배경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많은 철학자들이 세계 및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해 '왜'라는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전쟁의 부산물인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세계는 외형적으로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와 정비례하여 존재 불안 및 인간 소외가 함께  발생했기 때문이다.

물질을 신의 자리에 올려 놓은 물질만능주의가 인간의 몰개성화를 촉진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근대철학의 대표자 헤겔은 근대국가의 태동 원인을 그 특유의 정반합적 변증론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거시적으로는 일부분 해명이 되기도 하지만, 인류의 비인간화 내지 개개인의 파편화된 삶에 대해서는 규명할 수 없었다.

이것을 반성하고 비판하는 철학사조가 바로 실존주의다.

'실존철학'이란 말이 처음 언급된 것은 야스퍼스(K. Jaspers)가  펴낸 <현대의 정신적 상황(1931)>에서 였고,  2차 대전 직후 사르트르(J.P. Sartre)가 '실존주의'라는 개념을 최초로 주창했다고 알려져 있다.

학자들은 후설(E. Husserl, 1859 ~1938)의 현상학이 이 사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원래 실존이란 말은 '현실 존재'를 축약한 말로써 현존재 등으로 바꾸어 부르기도 한다.

실존을 뜻하는 'existere'는 '원래 있던 것이 밖으로 발현된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거의 모든 철학 사조가 차용했던 것으로써 '형이상학적 본질(essence)'와 뚜렷한 차이를 느끼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다만, 이 사상의 신봉주의자들은 '본질이란 본래 있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항상 밖으로 표츨하려는 욕구 혹은 잠재 상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실제로 구현된 자체 혹은 구현 상태가 바로 실존'이라고 주장한다.

 

이 철학 사상의 역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 보면, 전통적인 형이상학 기반의 서구 철학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형이상학은 플라톤을 시작으로 해서 오랜 세월 동안 서양철학의 근간을 이루도록 도운 토대였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 혹은 본성을 보편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던 형이상학은 근대 이후 설 자리를 점차 잃어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두된 사상이 바로 실존주의라고 할 수 있다.

실존주의자들은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그들만의 사유체계를 구축한다.

이를 바꾸어 말한다면, 이들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해석을 통해 인간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서 세계 안에 주체적으로 실존한다고 믿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형이상학은 물론 합리주의, 실증주의 모두가 거부된다.

실존주의는 인간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유에서 오는 불안, 그리고 소외를 회피하지 않고, 자신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 삶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았다. 

이런 의미에서 실존주의자들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철학적 명제를 '나는 존재한다. 고로 생각한다'로 바꾸어 사용한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일찌기 사르트르가 그의 책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책에서 밝힌 한 대목이다.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Idea)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생각이다.

이데아가 무엇인가.

현상계를 뛰어 넘는 세계를 의미하며, 곧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근원이자 절대적 진리를 뜻한다.

인간이 어떤 것을 지각했을 때, 그것을 인식케 하도록 하는 원형, 원상, 혹은 본질인 것이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이 이데아야말로 진정한 세계이고, 현상계인 이 세상은 가상계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세계의 본질인 이데아의 그림자 혹은 투영체인 셈이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서양철학은 큰 틀을 유지해 왔고 고전주의 철학의 핵심인 대륙 합리주의 철학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게 된다.

 

반면,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동시에 상대화될 수 없는 주체로서의 실존은 어느 것으로부터의 파생물이 결코 아닌 존재다.

이래서 실존주의자들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고 주장한다.

'주체적 존재로서의 실존이 이데아 같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철학 명제는 당시 철학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것과 다름 없었다.

추상 개념인 형이상학적 담론은 이들에게 있어 아무 의미가 없다.

실존철학의 원리에 의하면, 신 혹은 본질은 선험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 있고, 자유로운 인간에 대해 생각하고 존재를 파헤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인 철학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이데거가 인간 존재를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 즉 피투된 존재(Geworfenheit)'라고 규명한 것이 그 좋은 예다.

이렇게 피투된 존재는 역사적, 사회적 조건에 속박받는 '세계-내-존재”(In-der-Welt-sein)'이며, 자연히 고뇌와 죄책 그리고 죽음 등의 한계상황(Grenzsituation)에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주어진 무한한 자유 속에서 필연적으로 허무와 부딪히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기 부정과 자기 초월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자각적인 주체성, 곧 '본래적 자기로서의 실존'을 확립하게 된다.

다시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는 곧 주체적 결단에 의한 새로운 자기 존재의 선택과 비약인 동시에 자유를 근거로 한 자기 '기투(企投, Entwurf)'라고 한다.

세상에 던져진 피투로서의 존재가 자기 주체성을 확보한 기투 존재로 승화된 셈이다.

 

무신론적 실존주의

사실상 실존주의 철학을 규명함에 있어, 무신론과 유신론을 분리해 생각하는 부분이 가장 난해하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실존주의'로 부르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니체(1844~1900)는 "신은 죽었다"고 부르짖은 바 있고, 사르트르(1905~1980) 역시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하고 단언한 것은 곧 그들 자신이 이 분파에 속했음을 선언한 것이라 하겠다.

사르트르는 니체 만큼 직설적으로 신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신의 존재는 알 수 없으니 괄호 안에 넣겠다"고 하여 그 역시 신 존재를 완곡하게 부인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잉여 존재'란 말이 나오게 된다.

신 없이 존재 규명을 하다보니 모든 것이 '우연'으로부터 발생된 것이고, 인간 역시 존재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존재, 즉 잉여된 인간이 된다.

하지만 그는 잉여 인간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것은 아니고, '인간은 자유롭게 살도록 선고받은 존재'답게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하였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인간 존재 해명은 '타자성 지향'에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의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긴 하지만, 주체로서의 의식을 전혀 갖지 않는 '즉자적 존재'가 아닌, 늘 스스로를 객관화, 반성, 그리고 관조함으로 인해 불안감 혹은 소외감을 떨치지 못하는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잉여 인간 역시 항상 외롭다.

위에 인용한 하이데거의 말이 맞는다면, 인간은 그냥 이 땅에 던져진 존재, 즉 '기투 혹은 피투된'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런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해 '불안한 나'는 '나와 같은 의식을 가진 타자'를 찾이 헤맨다.

같은 동질 의식을 가진 타자가 나를 규정해주면 존재론적인 불안과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타자가 '나의 나됨'을  규정하는 순간, 스스로를 객관화 하는 '대자적 존재로서의 나'가 사라진다.

실존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즉자적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즉, 존재 불안의 해소를 위해서 타자에게 다가서야 하면서도, 서로에게 규정되고 싶지도 않은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셈이다.

이런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차안을 떠나 피안의 세계로 넘어가는 방법 밖에는 남지 않게 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하나 있다.

실존철학자들이 그토록 헤겔을 뛰어 넘고자 했지만, 그의 이론을 일부 차용하여 그들의 철학을 정립했다는 점에서 철학 사조 간의  완전한 분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유신론적 실존주의

반면, 덴마크 출신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1813~1855)는 대표적인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로 손꼽힌다.

출생 연도를 감안하여 실존주의 철학의 창시자라고도 불리우기도 한다.

그의 철학적 첫 스텝은 당대의 대표적 철학가 헤겔의 사상에 반동하는 것이었으나, 후기로 들어가면서 기독교 비판에 치중하는 성향이 짙어진다.

그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소위 '자기됨(Selbstwerden)' 개념을 통해 처음 실존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드러낸다.

"인간은 정신이다. 그렇다면 정신은 무엇인가. 정신은 자기이다. 자기란 무엇인가. 자기란 자기 자신에 관계하는 관계이며, 또는 그 관계 안에서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관계이다. 인간은 무한성과 유한성, 시간과 영원성, 자유와 필연성의 종합이다. 종합은 양자 사이의 관계이다. (중략) 관계가 관계 자신과 관계하게 되면 이 관계는 적극적인 제3자가 된다. 이것이 자기이다."

 

말을 좀 많이 비틀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는 인간은 '정신', '자기', '관계', 그리고 '종합체'로 카테고리화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에 의하면 신과 인간 모두 정신이고, 이 정신이 바로 자기라는 것이다.

정신을 매개체로 신과 인간이 관계로 엮이게 되는 셈이다.

즉,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우연히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키에르케고르를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로 부르게 된다.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동시에 자신의 근원자인 신과 관계하는 자기야말로 실존적 인간 주체의 본원적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위에 제시된 4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만 결핍되거나 지양되면 실존적 주체가 전부 부인되는 오류를 낳게 된다는 점에서 무신론적 실존주의와 극명히 대비된다.

 

헤겔이 철학적 사유 방법론으로 역사학을 중시하고 논리학을 채택한 반면 키에르케고르는 이것들을 배격했다.

무엇보다 헤겔과 정반대로 철학을 종교로 들어가는 전주곡으로 이해했다는 점이야말로 그가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로 불리우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는 지나치게 이성을  중시하는 합리주의와 지식의 축적을 고집하는 주지주의 역시 반대했다.

다만, 여기서 그의 유신론이 전통 기독교의 신 개념과는 다소 차이를 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통 교회에서는 성례전 같은 의식이 중요시된다면, 그에게 있어서의 신은 인간의 순수한 정신과 감정을 전제로 하는 인간과 신 사이의 인격적 관계가 최우선시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규범과 도그마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이 관계성은 여전히 인간 편에서의 지적 결정을 초월하여 신앙을 통해서만 규명이 가능하다.

 

여기서 그의 사상을 대표하는 '단독자' 개념이 생성된다.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서의 실존은 인간 자체의 주체성, 즉 바로 나 자신 속에 내재해 있다.

따라서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고유하고 유일한 존재, 즉 단독자가 된다.

이 단독자는 다름 아닌 '신 앞에서의 단독자'다.

비록 이 두 관계 속에는 넘을 수 없는 질적 차이가 있고, 신에 이르기까지 많은 위기와 투쟁을 극복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신앙'이라는 것이다.

그의 저서<이것이냐 저것이냐>에는 이런 투쟁 과정을 통해 각성되어지는 실존이 세 단계로 기술되어 있다.

첫째가 감성적 혹은 미적 단계이고, 둘째로는 윤리적 단계, 마지막 단계가 바로 종교적 단계이다.

미적 단계는 아직 정신이 발현되지 않은 잠재 상태의 인생으로 특징지워지고, 윤리적 단계의 특성은 자신 스스로가 선택한 대상과 함께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최종적으로 종교적 단계에서 한 인간은 그의 실존의 진정한 각성을 이루고 진정한 단독자로서 신 앞에서 서게 된다고 하였다.

위의 논의들을 종합해 보면, 그에게 있어서의 신이란 현실 존재, 즉 실존의 최고 단계이고, 인간의 실존의 근거 역시 자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두어야만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키에르케고르와 함께 야스퍼스, 마르셀이 이 분파에 속한 철학자들로 간주된다.

 

다음 기회에 실존주의가 영향을 미친 다양한 영역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