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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기술

1. 쓴 글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기

by 크레이지티처 2021. 3. 19.

필자에게는 오래 전 대학 입시를 치룬 여자 조카가 하나 있다.

그녀는 그토록 원하던 S대는 들어가지 못했고, K대에 합격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입시생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야 할 고비를 고1에 겨우 넘겼다.

그녀와 삼촌인 나만의 비밀이니 독자 여러분이 아무리 귀해도 그 시기의 어려움에 관련된 상세한 이야기는 여기서 생략.

다만 글쓰기와 연관된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부천에 소재한 중학교에서 반 1등을 도맡아 하던 이 아이가 고교에 진학해서는 갑자기 성적이 곤두박질을 했다.

형님은 내게 SOS를 치셨고, 나는 곧장 분석에 들어갔다.

내가 보기에 석차가 떨어진 이유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를 따지기엔 학업 성적이 너무 형편 없었고,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줄 만큼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다.

'내신만으로도 대학을 간다는 이 시대에 이 지경이라니...'

일단 중간 고사와 학기말 고사 시험지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되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다.

"없어졌어~ 삼촌."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시험 범위에 해당하는 학습지를 일단 풀기로 했다.

헌데 조카의 문제 푸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뉴월 엿가락 늘어지듯이 세월아 네월아 이런 식이다.

느낌이 이상해서 시간을 정확히 재서 풀기로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수학 같은 경우에는 거의 빵점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었다.

곧장 분석에 들어갔고, 답은 쉽게 얻어졌다.

문제는 두 가지.

하나는 시간 내에 문제를 다 풀지 못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부담을 느끼는 문제가 계속 나오는 것에 대한 자신감의 상실이 그것이었다.

핵심이 드러난 만큼 해결책도 간단하였다.

-

일단 틀린 문항만을 따로 모아 오답 노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반복해 푼 다음, 또 틀리는 예제들이 나오면 그것들  또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었다.

틀리는 문제가 빠른 속도로 줄어갔다.

그 다음 단계는 스피드업으로 돌입했다.

문항 당 소요되는 시간을 20% 정도 줄여서 문제를 풀었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녀석은 2년 뒤에 치른 수능 수리탐구 수학 영역 시험에서 시간이 넉넉하였다.

아마도 영어에서 점수를 좀 더 얻었더라면 S대에 갔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있다.

-

수학이나 글쓰기나 똑같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틀린 문제를 따로 모아 놓아야 나의 약점을 파악할 수 있듯이 내가 보기에 형편 없는 글이라도 잘 모아 두어야 한다.

그래야 당신의 글쓰기 역사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나에겐 모 대학의 상담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재는 미국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지인 한 분이 있다.

우연히 그와 대화하는 가운데  모아 놓은 연애 시절 러브레터가 100통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눈이 번쩍 띄었다.

당시 필자가 운영하던 출판사에서 이것을 발행하면 100만 부는 넘게 팔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 이게 웬 로또냐. 하나님이시여~ 부처님이시여~ 알라신이시여~.'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빨리 그 편지를 찾아 오라고 채근하였다.

근데 우리 속담에 개똥도 약으로 쓰려면 찾기 어렵다라는 뭐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그 분이 딱 그런 경우였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찾고 있는 중이다.

독자들이여 명심하라.

여러분이 쓴 글은 위에 예시한 케이스보다 100배 이상의 가치가 있다.

글쓰기가 캄캄한 당신을 인도할 등대일 테니 말이다.

부지런히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알뜰하게 모아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쩌면 그것들이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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