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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기술

5. 충분히 소화된 논거

by 크레이지티처 2021. 3. 19.

글 쓰는 사람은 누가 보아도 수긍할 수 있을 만한 논거를 독자들에게 들이대야 한다.

여기서의 '납득할 수 있는 근거'는 자신의 것으로 '충분히 소화된 예증'을 뜻한다.

나는 앞서 2장에서 읽지도 않은 책을 발제문에 넣었다가 혼쭐이 났던 경험을 기술한 바 있다.

단순히 면피용으로 기재된 각주 혹은 미주로는 당신의 글을 읽는 상대를 굴복시킬 수 없다.

딱 보면 안다.

충분히 씹어서 소화된 인용문인지 아닌지를.

필자는 합법적으로 대학원 학위 논문을 다수 교열한 경험이 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때마다 느낀 감정이 베껴도 너무 베낀다는 것이었다.

요즘 신임 국방부 장관으로 예정된 S 씨의 학위 논문이 화제다.

한 페이지를 통째로 블록 복사한 것이 문제인 모양이다.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될까.

그가 논문을 쓸 능력 혹은 시간이 없어서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논문의 가치를 높여 줄 인용문에 대한 소화력에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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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음식을 잘 소화하려면 오래 씹는 방법 외에는 없다.

왜냐하면 아밀라아제는 입 속의 침샘에서만 분비되기 때문이다.

단백질만 분해하는 위에서는 탄수화물을 분해하기 어렵고, 이는 곧 소화불량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글쓰기도 이와 동일하다.

자신의 글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논거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대학원 과정은 글쓰기와 토론의 과정이다.

그래서 박사 학위의 최종 관문은 오럴 디펜스(Oral Defense)로 마무리된다.

까다롭기 그지 없는 이 스텝에서 교수들은 주로 인용된 논거의 출처 및 그것과  논문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집중 질문한다.

미국 같은 경우는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소위 '조건부 학위'로 승인해 준다.

이 조건부 딱지를 떼려면 굉장히 복잡한 스텝들을 다시 밟아야 해서, 일부 학생들은 이 주홍글씨를 감수하고 논문을 출판한다,

미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는 필자가 직접 들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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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논거는 마치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맞선을 보는 것과 같다.

과거 김영삼 정부 시절 린다 킴이란 무기 로비스트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적이 있다.

구구절절 좋지 못한 이야기는 거두절미하고, 내가 아직까지 이 여자를 기억하는 것은 검은 선글라스 때문이다.

기자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엔 언제나 특유의 검은 안경을 써서 비난이 폭주했었다.

왜 그들이 불만을 표했을까.

얼굴 표정의 핵심인 눈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적절하게 제시되지 못한 예증, 그래서 글 쓴 사람의 일방적인 주장만이 기술되었을 가능성이 많은 글은 마치 검은 선글라스 속에 자신의 의중을 숨긴 린다 킴과 유사하다.

이것은 글을 읽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정말 아니다.

다시 강조하고 싶다.

겉표지만 읽은 책, 혹은 누군가의 논문 속에서 발췌한 인용문을 무책임하게 재인용하는 지식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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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핫한 유튜브나 포털 사이트 파워 블로거들은 자신이 체험한 물건들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 나온 자동차를 시승하거나 전자 제품을 직접 사용하는 과정을 소개하는 분들이 주류를 이룬다.

아주 설득력이 있다.

가끔 국뽕(?)을 빠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이 써보니 좋다는 것만큼 상대를 설득시키는 기술은 없을 듯싶다.

본인이 읽지도 않은 책이나 논문, 혹은 그것들에 인용된 자료들을 무턱대고 재인용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이 블로그는 일차적으로 글쓰기의 기술에 관련된 부분을 다룰 것이고, 곧이어 글쓰기 심리에 대해서도 언급할 예정이다.

글쓰기의 심리에서 이와 관련된 보다 깊은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의 기술이란 저자의 글을 읽어 줄 독자들을 설득하는 기술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필자는 이 블로그의 대상을 논문을 쓰거나 논술을 준비하는 입시생만을 대상으로 삼고 싶지 않다.

수필을 쓰거나 담담한 일상을 담아내는 일기 형식이라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기술된 글쓰기의 기술들은 상당히 유용할 것이라고 믿는다.

자, 다음 회에서는 메이저 텀(Major Term)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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