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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별곡

3. 플러싱에서의 첫날밤

by 크레이지티처 2021. 3. 24.

나는 지금 뉴욕 브롱스의 한 버거킹 매장에 앉아있다.

쉴 틈도 없이 공항에서 이 곳으로 곧장 달려왔다.

형님은 누구나 뉴욕에 처음 오면 이 버거킹에서 한끼를 해결한다면서 앞장 서셨다.

사실 수술 후유증으로 밀가루 음식을 먹는 것을 삼가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전형적인 흑인 동네 한복판이었다.

그냥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스토어다.

그는 유창한 영어로 주문을 했다.

내가 20불 지폐를 꺼내 지불했다.

첫 달러화 사용이다.

형님이 한마디를 건넨다.

"워어~~~ 돈이 빳빳한데."

글쎄 빳빳한 것이 지폐인지 내 마음인지 나도 알 수 없다.

받아든 버거가 예상보다 크다.

옆 좌석의 타이슨같이 생긴 흑인이 흘깃 나를 바라본다.

딱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윙크를 한다.

분명히 웃는 얼굴로 나를 보는 것인데 묘하게 기분이 좋지 않다.

우걱우걱 빵을 씹으면서도 나를 휩싸고 있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그 맛을 느낄 수 없다.

모든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는 것 같은 이 야릇한 기분.

뭐랄까... 미국에 대한 첫 인상이랄지, 동경심이랄지, 아무튼 그런 것들의 크기가 이 햄버거의 맛보다 작은 탓이리라.

 

조건반사적으로 먹는 것 외에는 아무 감흥도 없는 식사.

무한 리필 콜라를 담은 대형컵을 한 손에 들고 바깥으로 나왔다.

빨대로 자극적인 탄산을 음미하며, 비로소 여유 있게 거리 풍경을 보게 되었다.

어디선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눈을 돌이켜 보니 저 멀리 지하철이 지나간다.

딱 보기에도 엄청 낡은 열차라는 것이 느껴진다.

한국의 지하철과는 비교가 좀 어렵다.

옛날 경인선을 달리던 궤도 열차 비슷하다.

지하철이 지상 고가철도로 지나가는 것이 신기해서 바라보니 형님이 한 마디 거든다.

"저게 100년 넘은 지하철이야, 저게 처음 만들어졌을 때 우리나라는 상투틀고 에헴하던 시대였었어."

레일을 버티고 있는 H빔이 벗겨진 페인트 때문인지 위태로워 보인다.

보수 공사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아서인지 역사의 흔적은 있지만 안전해 보이진 않는다.

내려진 스토어 셔터엔 알 수 없는 그림들이 휘갈겨 그려져 있다.

아니 공터 담벼락, 심지어 자동차와 교통 표지판에도 스프레이 낙서 천지다.

훨씬 나중에야 이 암호같은 그림들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아슬아슬하게 전선에 걸려 있는 신호등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실타래같이 엉켜 있는 전선에는 누구 던졌는지 기가 막히게 운동화가 걸려 있다.

이것 역시 마약 거래 포인트를 의미한다는 것을 후에 알았다.

여기가 과연 세계의 심장 뉴욕이 맞나 싶다.

'맨해튼은 이보단 낫겠지...'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형님이 조카 집에 가잔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일반 가정을 첫 방문하는 것이어서 호기심이 발동한다.

장시간의 비행 끝이라 뭔가 모를 피곤함이 몸에 배는 느낌이지만 내겐 지금 선택권이 없다.

뭐 하나라도 경험하고 싶은 욕심이 그것을 느낄 수 없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골목을 돌고 돌아 도착한 동네는 딱 보기에도 허름하다.

주변의 모든 집이 그러해서 딱히 돋보이지 않을 뿐이다.

지하철의 역사와 함께 호흡하는 집이 분명하다.

25센트짜리 쿼터 하나를 주차 미터기에 집어넣고 2층으로 올라간다.

좁다.

통로와 주거 공간 모두.

뉴욕의 대다수의 집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이 집 역시 마찬가지어서 계단을 오를 때 심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실내를 공명한다.

발 디디기가 조심스럽지만 그렇게 할수록 더 커지는 발자국 소리.

난감하다.

 

그분의 조카는 여자다.

그녀는 형님을 보자마자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불평을 쏟아낸다.

"삼촌, 이게 뭐야. 쥐새끼하고 바퀴벌레 때문에 살 수가 없어!"

속으로 '이게 말로만 듣던 아메리칸 스타일인가보네...'라고 생각했다.

그가 내 눈치를 보며 조카를 위로한다.

"그래도 싸잖아. 한 달에 500불이면..."

난 재빨리 계산해본다.

'헐, 방 하나에 우리나라 돈으로 65만원...'

그녀는 불체자, 공식적인 말로는 서류미비자다.

그로 인해 직장에서 자주 해고된 경험이 있는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삼촌에 대한 불만도 대단한 듯하다.

그녀를 위해 삼촌은 무엇인가 열심히 설명하지만 뭔가 부족해 보인다.

아마도 그 조카는 이 먼 미국으로 삼촌을 믿고 건너온 모양이다.

나도 그녀에게 삼촌에 해당하는 그 분을 믿고 이 땅에 건너온 형편인데...

그래서인가 그들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 속에 나는 마냥 이방인일 수만은 없다.

 

형님이 조카 집을 뒤로 하고, 퀸즈보로에 있는 플러싱에 가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인촌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인 상업지구 및 거주지구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주변이 온통 중국 간판이란다.

한인들은 점차 이 곳에서 밀려나 노던 블러버드나 롱아일랜드 쪽으로 진출하고 있단다.

당신 집은 좁으니 오늘 밤은 플러싱에 사는 어느 후배 집에 들어가 자란다.

서운했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모텔에서 안 자는 것만 해도 얼마냐'하는 마음이 들었다.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돈지갑을 만지작 거리면서 나 스스로를 위로한다.

날씨가 덥다.

40여 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에 있는 어느 고층 아파트다.

비교적 깜끔하고, 현관에는 안내실에 수위도 있다.

그런데 그 후배가 없다.

길바닥에 앉아 30분 여를 기다렸다.

그때 우리가 기다리는 '그'가 저편에 오는 것 같다.

“어이, 정 군, 한국에서 막 도착한 동생인데, 며칠 좀 부탁하네.”

내 생각과는 달리 그 사람은 아주 싹싹하다.

인사성도 밝고 친절해서 마음이 좀 놓인다.

이 한 마디를 남기고 형님은 차를 몰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나는 그에게 이끌려 12층으로 올라간다.

낯선 어느 한국인이 한 분 더 있다.

수인사를 건넸다.

'미스터 리'라고 불러달란다.

이렇게 플러싱에서 첫날밤은 지나가려는가.

조그마한 매트리스에 몸을 맡겨보지만 잠을 잘 이룰 수가 없다.

오른고개 너머로 아련히 뉴욕 메츠 구장의 조명탑이 휘황찬란하다.

'야간 경기를 하나보네?'

혹시 야구를 시청하면 불안감 해소에 도움이 될까 싶어, TV를 찾았지만 보이질 않는다.

건물이 높아서인지 저 멀리 맨해튼의 마천루 야경이 손에 잡힐 듯하다.

이런 화려함 속에 숨어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슬며시 내 맘 한켠에서 올라온다.

머리를 흔든다. 

내가 자꾸 뒤척이자 미스터 정이 슬며시 말을 건넨다.

“첨엔, 다 그래요, 시차 때문이기도 하지만, 억지로라도 잠을 자 두는 게 좋을 겁니다...”

미스터 리는 맨해튼 어느 요리집에서 막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쳐 눕기가 불편한지 나보다 더 뒤척거린다.

이 둘은 10년 째 서류미비자다.

어둠 속 달빛에 어렴풋이 비치는 그들의 등을 바라보며, 자꾸 마른 기침이 나온다.

아마도 수술 후유증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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