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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별곡

5. 아내와 아이들의 입국

by 크레이지티처 2021. 3. 24.

2005년 8월 16일 오전 12시, 뉴욕 JFK 대한항공 전용터미널 앞.

하늘은 청명하다 못해 바늘로 콕 찌르면 파란 물이 주르륵 흐를 것만 같다.

오늘 드디어 가족들이 이 곳에 도착한다.

하지만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공항 로비를 서성이고 있다.

사람들이 입국장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마중  나온 사람들과 범벅이 되어 자칫하면 길이 엇갈릴 것 같은 예감에 연신 까치발을 한다.

아내와 아이들을 태운 비행기가 10분 정도 연착을 했다고는 하지만, 입국심사가 너무 늦다.

내심 걱정이 된다.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혹시 나처럼 비행기 후미에 앉아서 그런가.

아니면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식구들로 인해 국토안보국 직원이 무슨 오해를 한 것일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자라목을 하고 있는 나에게 형님이 슬며시 다가오신다.

"너무 걱정 말어. 자네도 1시간이나 늦었었잖아."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 든다.

나는 계면쩍게 웃는다.

 

30분 여가 더 흘렀다.

그제야 짐 한 보따리를 카트에 얹은 아내와 아이들이 저편에 보인다.

그들은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해 두리번거린다.

거구의 외국인들 사이에 끼어 있어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아이들은 엄마 옆에 딱 붙어 엄마가 보는 곳으로 얼굴을 향한다.

꼭 호숫가 주변을 자맥질하는 오리 가족 같다.

세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폼새를 보느라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가슴이 벅차다.

그들을 향해 오른손을 번쩍 들고 힘차게 좌우로 흔들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이런 마음이 들까 싶다.

눈이 마추친 아내는 활짝 웃었지만 애들은 표정엔 변화가 없다.

긴장한 탓이리라.

처의 얼굴은 건강하지만 좀 야위었다.

나는 딸을 보고 "웰컴 투 유에스에이~~~"라고 일부러 크게 외쳐 본다.

기대와는 달리 그녀는 좀 창피해하는 표정이다.

낯선 곳에서도 타인을 의식하는 것이 영락없이 사춘기 소녀다.

아이들을 꼭 껴안았다.

그리고 아내를 참 오랜만에 안아본다.

참 따뜻하고 편안하다.

"역시 내 마누라가 최고야."

이러는 나를 그녀가 살짝 밀어낸다.

"아이 참, 왜 이래요..."

한국에서도 잘 하지 않던 행동을 하니 아내가 계면쩍어 한다.

가족과 떨어진 그 사이에 나도 아메리칸 스타일로 바뀌어가나 보다.

 

형님과 아내는 초면이다.

쑥스러운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우리는 귀가를 서둘렀다.

딸과 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모든 것이 영어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 신기하다는 딸.

그래 그렇단다,

이제 너희는 이 영어를 정복해야 한단다.

"핑거 프린팅이 잘못 찍히는 바람에 늦었어요."

입국심사가 너무 늦은 이유에 대해 아내가 말하는 것도 귀에 잘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가볍게 흥분한 탓이리라.

다른 사람과 분리되어서 공항 오피스에 불려 갔을 가족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그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아내와 딸의 핑거 프린팅을 바꾸어 하는 바람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당신, 의사소통은 어떻게 했어?"

"네. 별 문제없었어요. 잘못 알아들은 것 같으면 다시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했죠. 머"

아마도 이민국 직원들이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게 친절하게 대해준 모양이다.

그래도 신통방통하다.

내 아내가 이리도 당차고 침착할지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이 말을 옆에서 엿듣던 형님이 한 마디 거든다.

"아, 이 사람아 자네 걱정이나 해. 여자들이 훨씬 영어 빨리 배워~"

 

 

 

"OO야, 아빠 미국으로 떠난다. 한 달 뒤에 보자."

"네? 정말 가요?"

뉴욕으로 떠나기 며칠 전 아이들이 보인 반응이다.

예상했던 그대로다.

아이들은 설마 설마했었던 모양이다.

비행기 티켓을 예매한 후에도 그 녀석들은 나한테 미국에 대해 별로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간단한 여행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 틀림없다.

내가 미국으로 가는 것이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곳에서 보자고 하니 얼떨떨해 한다.

이어지는 아들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럼 친구들하곤 다시 못 보는 거예요?"

낙선하기는 했지만, 친구들이 추천해서 전교 부회장 선거에까지 출마했던 아들로서는 당연한 걱정이었을게다.

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창 친하게 사귀던 친구 몇 명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표정이 뽀로통하다.

이 아이들 장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더라면 감행할 수 없었던 뉴욕행이었다.

녀석들이 어학에 대한 부담을 가질까 싶어, 뉴욕으로 출발하는 날까지 영어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빠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떠나는 이민이라 내가 오히려 애들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한 달 뒤, 내가 머물고 있는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바로 옆 루스벨트 애비뉴의 한 하숙.

우리 가족은 이른 저녁을 먹기 무섭게 다시 거리로 나섰다.

미국에 온 지 2개월 만에 벌써 두 번째 이사를 하기 위해서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 바로 돈이 문제였다.

인심 좋아 보이던 주인 할머니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자, 한 달 하숙비로 3,500불을 요구하신다.

내가 머물던 그 조그만 방에 우리 식구가 모두 머무는 조건으로 말이다.

전날 밤 아들이 와서 조용히 수군대더니 이런 결과가 도출된 모양이다.

그 할머니 집의 렌트비는 1,400불.

초등학생이 자야 할 자그마한 싱글베드가 하나 달랑 있는 방.

연식은 족히 70년은 넘어 보이는 집.

해도 너무 했다 싶었다.

500불만 깍아 달라고 하고 싶지가 않았다.

알량한 동포애에도 호소하기는 더더욱 싫었다.

문득 플러싱 공영 주차장에서 미스터 리가 나에게 스쳐 지나가듯이 들려 주던 말이 떠올랐다.

"캐쉬있다는 거 자랑하지 마세요. 그랬다가는 몽땅 털리는 거 시간 문제랍니다..."

눈치 빠른 이 할머니가 한국에서 막 도착한 우리 가족에게 뭘 기대했을지 그 답은 뻔했다.

그곳에서 머뭇거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둘이 자기에도 빠듯한 독방에서 네 식구가 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길바닥에서 자도 살벌하기 짝이 없는 그 인심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아내가 특히 그랬다.

차라리 모텔에 가서 자도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킨다.

급히 형님에게 연락을 했더니, 플러싱 동쪽에 있는 베이사이드 자기 집으로 오란다.

거기서 일단 하루를 자기로 했다.

짐을 빼서 길바닥에 부린 후, 어둠이 짙어가는 주변을 잠시 둘러 보았다.

길 건너편에 대형 한인교회가 보인다.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대형교회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짐을 지키라고 말한 후, 길을 건넜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훨씬 크다.

사찰 집사님도 보이지 않는다.

봉투함에 꽂혀 있는 예쁜 주보 하나를 기념으로 챙겼다.

대성전은 잠겨 있어 부속성전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참 아늑하다.

벽에 달려 있는 간접 조명으로 인해서일까...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이 나를 휘감는다.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인천공항을 이륙할 때, 드렸던 그 기도를 다시 반복한다.

그 와중에도 비행기 좌석 옆에 앉아 있던 스리랑카 노부부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30분 뒤, 저편에 진한 감색의 교회 깡통 밴이 굴러온다.

브레이크 패드가 다 닳았는지 정지음이 "찌이이익~~~" 아주 요란하다.

그래도 반갑다.

애들 역시 고물차이긴 하지만 차 옆구리에 길게 써 있는 영문 교회 이름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이 넓은 미국 땅에 그래도 기댈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 한편에 알 수 없는 고마움이 쌓인다.

"캐딜락 리무진이라고 생각하고 얼른 타~~~"

유쾌한 형님의 농담에 아내가 활짝 웃는다.

뉴욕에 도착해서 제일 크게 웃는 모습에 괜히 마음이 놓인다.

잘 보이려고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좋아사 저런 것인지 잘 모르지만 말이다.

에어컨이 잘 작동하지 않는 깡통 밴 차창을 열고 퀸즈의 더운 공기를 힘껏 마셔본다.

조금 전 마시던 그것과 사뭇 느낌이 다르다.

덜컹거리는 흔들림에 애들이 알 수 없는 "까르르~~~"로 화답한다.

공항에서 하숙으로 갈 때에도 영어 간판을 신기해 하던 딸이 바깥 풍경에 한눈을 팔고 있다.

그러다가 '함지박'이라는 한국 간판을 보고 비명을 지른다.

"아빠, 아빠 저거 한글아냐 한글?"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곳을 발견해서 안심이 되었나 보다.

과연 나는 이 미국에서 한국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대로 '서바이벌의 황제'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아내와 천진난만한 이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게 해 줄 수 있을런지.

저 멀리 까만 하늘에 회색 구름이 바람에 실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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