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도착한 지 한 달째.
가족들이 아직 미국에 도착하지 못했다.
전화로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다.
화상통화를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의치가 않다.
집 정리를 하느라 분주한 아내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나는 여전히 플러싱의 미스터 정의 아파트에서 한 달째 신세를 지고 있다.
특유의 해양성 기후를 그대로 갖고 있는 뉴욕은 한국 못지 않게 습하다.
국지성 소나기가 자주 내린다.
4계절이 뚜렷한 것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해서 안심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난 그 하숙을 옮겨야 했다.
뜻하지 않은 오해 때문이다.
7월 하순을 치닫던 그 무덥던 어느 여름날.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는데 누군가가 문 밖에서 초인종을 눌러댄다.
아주 집요하다.
10분이 넘도록 논스톱이다.
이 아파트를 렌트한 미스터 정이 문고리를 잡다가 밖을 내다보는 조그마한 조망경을 내다보더니 흠칫 놀라는 표정이다.
그러더니 오른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댄다.
저 손짓은 분명히 조용히 하란 이야기다.
그 동작을 바라보던 미스터 리는 익숙한 동작으로 실내의 등을 모두 끈다.
그러더니 나에게 신경쓰지 말고 이불속에서 잠자코 잠을 자란다.
잠이 올리가 있나... 이런 상황속에서.
뜬금없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나즈막히 미스터 정에게 물었다.
"누구에요?"
그는 그냥 웃기만한다.
밖에서는 계속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진다.
이어 들려오는 고함소리.
"너 그 안에 있는거 다 알어. 빨리 문 열어!"
난 대강 짐작이 갔지만 이 팀의 일원으로서 행동해야만 했다.
잠을 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무슨 돌발사태가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감에 정신만 말똥말똥해진다.
아침이 되었다.
시침이 7시를 가리킨다.
이곳 사람들은 늦잠을 잔다.
한 사람은 맨해튼에서 노점상을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퇴근한다.
그의 룸메이트인 다른 한 사람은 맨해튼 32가 한인타운의 한 식당에서 주방 보조로 일을 한다.
전부 캐쉬로 돈을 버는 일이라 몸이 고될 수밖에 없고, 당연히 이들은 새벽잠이 많다.
그런데 밤새 뜸하던 노크 소리가 다시 이어진다.
"질긴 인간이군..."
나즈막하게 말을 내뱉은 미스터 정은 아파트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이 아파트는 참 신기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10층 이상은 2개층을 한 사람이 쓸 수 있도록 위 아래층을 통로로 연결해놓았다.
그러니까 내가 기숙한 하숙은 2층집인 셈이다.
그 아래층엔 한 아이가 잠시 들어와 살고 있다.
한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뉴저지 포트리에 산다고 했다.
미스터 정이 아는 분의 아들이다.
여기 학제로 4학년인가...
미국에 들어와서 두 학년을 낮추었다고 한단다.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플러싱에 있는 학원에 공부하러 잠시 이 아파트에 들어와 있었다.
그는 이 아이를 데리고 아래층 문으로 몰래 복도 밖으로 나간다.
아마도 밖에서 노크하는 사나이는 이 집 구조를 자세히 모르는 모양이다.
따라서 그는 미스터 정이 아래층 그러니까 11층 복도로 나가는 것을 알리가 없다.
요지는 이렇다.
밖의 사나이는 미스터 정의 빚쟁이다.
미스터 정은 카지노광이다.
그것이 나쁜 것인지 좋은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는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다.
40 중반의 나이에 아직 미혼인 그는 자유분방하다.
생각하는 것도 20대 같다.
부럽긴 하다.
먹여 살릴 부양 가족이 없다는 게 이럴 땐 참 편한 듯하다.
다만 그는 그 댓가로 적지 않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
같이 사는 미스터 리도 그와 함께 거의 매일 저녁 뉴저지 애틀랜틱 시티 카지노로 가는 공짜 셔틀 버스에 오른다.
하루 종일 좌판에서 번 100달러를 손에 꼭 쥔 채로 말이다.
거기에 덤으로 무료 쿠폰까지 얹어주니 더 유혹적이었을게다.
어느 날은 나에게 "여기서는 모두 카지노를 취미로 해요"하면서 동승을 권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미국에 갓 도착한 한국인들이 현찰을 많이 갖고 있다고 소문이 나 있단다.
속된 말로 '먼저 먹는 놈이 임자'란 인식이 플러싱 한인 사이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그 지옥의 구렁텅이에 발을 딛지 않았다.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카지노에 중독되지 않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오해다.
미스터 정이나 미스터 리는 주일만 되면 어느 조그마한 개척교회에 나가서 기타와 피아노를 신나게 치면서 봉사한다.
다음 날 아침 9시.
난 형님의 차에 올라탔다.
형수님도 같이 계셨다.
한밤중 초인종 사건이 터진 날, 미스터 정과 몰래 같이 나간 그 아이는 형수님의 여동생 아들이다.
"아저씨, 우리는 왜 이리로 나가요?"하며 큰 소리로 묻자, 미스터 리가 당황하며 아이의 입을 막던 모습이 썩 보기 좋지 않았었다.
난 완곡한 어조로 "형수님, 이제 그만 K를 집으로 보내시죠..."라고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분의 취조가 시작된다.
이미 두 분은 미스터 정의 전력(?)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완전한 착각이요, 실수였다.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프 더 레코드를 요구한 나의 요청은 묵살되었다.
자신의 여동생 집으로 곧장 전화를 건 형수님.
"내가 뭐랬니, 그 도박꾼한테 보내면 무슨 교육이 되겠니? 엉. 그래 너 내 말 안듣고 애를 그리로 보냈다가 교육 잘되겠다."
형사가 취조해도 그렇게는 못하리라...
그 말을 듣는 내 맘은 생채기로 시뻘건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안타깝기도 하고, 미스터 정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분노가 일기도 하는 일종의 패닉 현상이 내 마음 저 끝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참기가 몹시 어렵다.
며칠 후.
난 한국에서 떠날 때 챙겼던 여행용 가방 2개를 들고 아파트 정문을 나섰다.
전날 저녁에 급히 잡은 어느 한인 할머니의 하숙으로 옮기기 위해서다.
며칠 내내 북극 얼음보다 더 차가운 두 사람의 시선을 버티기 힘들었다.
차라리 말을 하거나 욕을 했으면 쿨하게 헤어졌을 텐데 말이다.
알아서 기어나가라는 식의 침묵이 훨씬 더 가혹하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미스터 리는 전날 밤 식당 주방에서 김치 항아리를 들다가 허리를 다시 다쳐 누운 채로 말도 건네지 않는다.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는 그에게 몸 관리 잘 하라는 말을 건네지 못하고 집을 나왔다.
설움이 북받친다.
누구 탓인지 명확하지 않다.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기간이 얼마일지는 모르겠으니, 당분간은 내 의지로 미국 정착이 결정되지 않으리라는 것 말이다.
하숙으로 가는 길에 한국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국제 전화 카드를 꺼내든다.
하지만 웬일인지 전화번호가 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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