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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헤이, 아 유 차이니스? 뉴욕에 도착한 지 2개월. 드디어 우리 가족은 퀸즈 한인타운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래도 미운 정 고운 정 다든 곳이라 시원섭섭하다. 짐을 실은 교회 밴이 퀸즈와 브롱스를 잇는 와잇스톤 브리지를 시원하게 관통한다. 다리 왼편으로 맨해튼 마천루가 화려하게 펼쳐져 있고, 옆에 앉은 아내는 여유 있는 자세로 그 경치를 구경하고 있다. 우리는 뉴욕시 북쪽 브롱스에서 20분 정도 더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나오는 한적한 소도시 A로 이사하였다. R 형님이 소개한 어느 한인의 집이었다. 총 인구가 5000명이 채 안 되는 정말 조그마한 타운이다. 바로 옆 동네 S는 일본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어서 거리를 걷다 보면 제법 아시아인들이 눈에 띈다. 이 곳 사람들은 집을 마련할 때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2021. 3. 24.
7. 은밀한 유혹 뉴욕시엔 5개의 보로(Five Boroughs)가 있다. 한국에서도 들어본 적이 있는 맨해튼, 브롱스, 브루클린, 퀸즈, 그리고 스태튼 아일랜드가 그것들이다. 이중 스태튼 아일랜드는 섬이다. 맨해튼 남단에서 이 섬으로 페리가 수시로 운행한다. 배 이용객은 섬 주민보다 관광객이 훨씬 많다. 자유의 여신상을 먼 발치에서나마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보로는 한국으로 치면 구가 5개 정도 합쳐진 광역지자체 규모라고 할 수 있다. 뉴욕주 행정구역 상으로는 카운티로 부르고, 한국에선 군 단위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뉴욕시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브루클린 보로는 뉴욕주 구분으론 킹스 카운티다. 미국에 도착한 뒤 몇 달은 뉴욕시의 가장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퀸즈 보로에 살았다. 5곳 가운데 제일 큰 면적을 차지.. 2021. 3. 24.
6. 유일한 피붙이와의 상봉 2005년 8월 22일. 우리 가족은 지금 워싱턴 D.C.로 향하고 있다. 미국 땅에서 단 하나의 혈육이 살고 있는 그곳으로 말이다. 유미는 아내의 외사촌 동생이다. 아내와 내가 연애할 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꼬맹이가 미국으로 시집와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 지난 주부터 계속해서 아내와 연락하더니 결국 오늘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녀의 집은 워싱턴DC 북쪽에 위치해 있는 메릴랜드 몽고메리 카운티에 있다고 했다. 유미는 남편과 두 아이 그리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한 집에 살고 있다. 과연 그 분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좀 겁이 나기도 한다. 플러싱에서 만났던 한인들에게 별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던 아내가 더 걱정이 된다. 남이야 '에이 얼굴 안 .. 2021. 3. 24.
5. 아내와 아이들의 입국 2005년 8월 16일 오전 12시, 뉴욕 JFK 대한항공 전용터미널 앞. 하늘은 청명하다 못해 바늘로 콕 찌르면 파란 물이 주르륵 흐를 것만 같다. 오늘 드디어 가족들이 이 곳에 도착한다. 하지만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공항 로비를 서성이고 있다. 사람들이 입국장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마중 나온 사람들과 범벅이 되어 자칫하면 길이 엇갈릴 것 같은 예감에 연신 까치발을 한다. 아내와 아이들을 태운 비행기가 10분 정도 연착을 했다고는 하지만, 입국심사가 너무 늦다. 내심 걱정이 된다.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혹시 나처럼 비행기 후미에 앉아서 그런가. 아니면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식구들로 인해 국토안보국 직원이 무슨 오해를 한 것일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자라목을 하고 있는 나에게 형님이 슬며시.. 2021. 3. 24.
4. 뜻하지 않은 오해 뉴욕에 도착한 지 한 달째. 가족들이 아직 미국에 도착하지 못했다. 전화로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다. 화상통화를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의치가 않다. 집 정리를 하느라 분주한 아내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나는 여전히 플러싱의 미스터 정의 아파트에서 한 달째 신세를 지고 있다. 특유의 해양성 기후를 그대로 갖고 있는 뉴욕은 한국 못지 않게 습하다. 국지성 소나기가 자주 내린다. 4계절이 뚜렷한 것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해서 안심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난 그 하숙을 옮겨야 했다. 뜻하지 않은 오해 때문이다. 7월 하순을 치닫던 그 무덥던 어느 여름날.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는데 누군가가 문 밖에서 초인종을 눌러댄다. 아주 집요하다. 10분이 넘도록 논스톱이다.. 2021. 3. 24.
3. 플러싱에서의 첫날밤 나는 지금 뉴욕 브롱스의 한 버거킹 매장에 앉아있다. 쉴 틈도 없이 공항에서 이 곳으로 곧장 달려왔다. 형님은 누구나 뉴욕에 처음 오면 이 버거킹에서 한끼를 해결한다면서 앞장 서셨다. 사실 수술 후유증으로 밀가루 음식을 먹는 것을 삼가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전형적인 흑인 동네 한복판이었다. 그냥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스토어다. 그는 유창한 영어로 주문을 했다. 내가 20불 지폐를 꺼내 지불했다. 첫 달러화 사용이다. 형님이 한마디를 건넨다. "워어~~~ 돈이 빳빳한데." 글쎄 빳빳한 것이 지폐인지 내 마음인지 나도 알 수 없다. 받아든 버거가 예상보다 크다. 옆 좌석의 타이슨같이 생긴 흑인이 흘깃 나를 바라본다. 딱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윙크를 한다. 분명히 웃는 얼굴로 나를 보는.. 2021. 3. 24.